네모를 말해봐

작가․미술관 넘치지만 모두가 제각각…교류․연대 부족

광주는 기획자에게 기회의 땅이자 버티기 힘든 곳

각각의 문화현장 아우르는 아카이브․장기 플랜 있어야

요즈음 지역의 가장 ‘핫’한 작가로 손꼽히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과 3년 동안 20개 이상의 프로젝트와 전시를 기획해온 전방위 전시기획자 정위상무가 만났다. 69년 동갑내기인 이들은 지역 예술계 ‘허리’로서의 책임을 공감하며 광주의 ‘문화 네트워크’에 대해 열정적인 대화를 나눴다. 목련이 북쪽을 향해 꽃망울 터트리던 3월 어느 날, 남구 백운동 이이남 작가의 작업실에서 펼쳐진 광주 문화계에 대한 실망 혹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

내가 아는 이이남, 내가 아는 정위상무

이이남(이하 이)=2002년 무렵 대학 강의 나갈 때 정상무를 만났는데, 외국에서 현대미술을 배우고 와서 그런지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보여줬다. 우리 지역 작가들이 사실은 그런 실험적 작품에 대해서는 인식이 아직은 낮고, 또 그런 작가들이 많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나도 관심을 갖고 봐 왔다. 언제부터인가 전시장에 안 보이더라. 기획자로 활동하시는 줄 몰랐다.

정위상무(이하 정)=다른 데 있었지. 전국 돌아다니며 강의 보따리 장사 하고.

이=기획자로서, 작가가 기획한 것은 또 다르다고 봐. 정 선생은 작가 출신이니 작가를 이해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더 큰 전시, 글로벌한 전시를 기획하면 좋겠던데.

정=나도 이이남 씨를 한 3년 만에 본 것 같긴 한데 작업은 계속 봐 왔다. 작품이 좋으니까.

최근에 준비하는 작품-자개를 활용한 것-은 기존 작업 맥락과 잘 맞는 듯 하더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느낌이 들었다.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들이 관성화 될 수 있음에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또 인터뷰 자료를 봤는데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앱 관련해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봤다. 손 안에서 작품을 보게 한다는 시도,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동양과 서양, 명화의 새로운 가치 창출 등의 시도 들이 외국의 미디어작가들도 하지 않은 새로운 시도여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것들 보다보니까 개인적으로 관심 가진 건데 ‘구글 아트 프로젝트’라고, 디지털 미술관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외국의 미술관들 385개 가량 계약을 해서 그 작품들을 구글이나 다음 스트리트뷰처럼 3D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 시도와 함께 트랜드에도 잘 맞다고 본다, 그 트랜드를 놓치지 않고 고전의 중요성을 잃지 않는 것, 새로운 시도들이 이야기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3월 26일부터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운동(韻動)’라는 미술인 모임 창립전시회를 갖는다. 이 ‘운동’의 회원은 7명인데 애초에는 일 때문에 모인 것이다. 그랬다가 뜻이 맞아 계속하자는 데 의기투합했고, 모두 40대 작가들이었다. 그런데 우리(40대)는 중간에 낀 세대다. 원로와 신인 사이 그 중간에서 그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어떤 발언이나, 양쪽이 못하는 것들을 미술이나 문화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데 모두 공감했다. 운동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발언을 통해서 그걸 보여주자는 것이고. 각기 회원들이 다른 매체를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재밌게 만나고 있다.

물론 우리들은 그동안 만난 지 2년가량 됐는데, 독일 베를린 또 뉴욕 등과 연계작업도 진행 중이다. 서로 만나면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재료와 생각이 다르고, 열심히 하는 작가들이고. ‘운동’ 이 내세운 ‘저항’이란 것은 광주의 정신, 5․18 같은, 그런 것을 ‘국민미술헌장’ 형식으로 발표한다.

광주에서 예술인, 기획자로 살아가기

이=그런데 작품은 접은것인가?

정=요즘 쌍칼이 유행이라더라. 전시기획자도 작품을 하고 있고, 성능경 선생도 (평론, 전시 기획 하면서) 퍼포먼스도 하고 있고. 작년에 일민미술관에서 한국의 평론가 7인이 하는 작업 같은 전시는 작가도 기획한다는 걸 보여준 기회였다고 본다. 작업과 전시 큐레이팅은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라 같은 한 몸의 쌍둥이다. 그래서 작업을 안 한다고 하기는 힘들겠다.

내가 기획을 하고 작가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자신의 악기를 연주한다는 생각으로 한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정체를 분명히 해라, 작가냐 전시기획자냐?" 그건 굉장히 곤란한 질문이다. 영역에 따라서 너는 사진가냐 화가냐 구별하는 것 같고, 다같이 예술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언젠가 이 선생도 그런 큐레이팅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재미있을 것 같다. 특히 작업하던 사람이 기획하는 것, 윤 익 실장(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같은 경우 전시를 하다가 간 경우 아닌가. 작가 입장에서는 작업에 소홀해지게 되는 데 그런 점들이 걱정되기도 하고, 작품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정=나이 50~60대 작가들 보면 머리가 아직 까맣지만 글 쓰는 사람이나 기획자들을 보면 그 나이에 흰머리 된 분들이 훨씬 많다. 내가 3년 사이에, 잔머리를 많이 쓰다 보니 흰머리가 늘었다. 나도 오래 살려면 작업을 해야 되는데….(웃음)

나는 평론(글쓰기)과 큐레이팅을 미술과 구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현대 미술가들은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물리적인 작업 뿐 아니라 글도 쓰고 말도 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서 홍보도 해야 되고, 사생활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 화가들은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걸 보고 입으로 이야기하면 그걸 받아 적고 옮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시대다. 하지만 지금은 평론가보다 작가들이 글을 잘 쓰는 경우가 많다. 전문 기획자보다 작가들이 큐레이팅을 잘하는 경우도 많고. 아까 ‘운동’의 경우도 ‘국민미술헌장’을 만들고 선언하는 행위 자체가 큐레이팅 아닌가.

이=기획 자체도 미술의 연장이라는 이야기 공감이 간다. 다만 개인적으로 정 선생에게 주문하고 싶은 게 우리(지역)가 가지고 있는 작가의 역량을 외부로부터 선택당하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나가서 작가를 소개하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작업을 하고 그런 기획도 하셨으면 좋겠다.

연초 이원일 씨가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사실 나도 올해 이원일 선생과 함께 전시를 많이 잡아뒀는데, 아쉽다. 그런 분들이 우리 지역 안에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그런 역할을 정 선생이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

광주라서 아쉬운것, 기대하는 것

정=작가로서 전시기획을 하는 일이 한계도 있다. 전문 큐레이터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인턴 등을 거치면서 미술판,(국내외) 커넥션 네트워크 등을 갖고 있고 거기에 관련, 기회와 정보가 주어지는데 나는 개인적인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런 큐레이팅을 위한 네트워크들이 비교적 약하다. 하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괜찮은 전시 기회들이 여러 번 왔다고 본다. 창원아시아미술제2009년의 경우 광주 작가들에게 현대미술이라는 새 주제를 주고 작품 제작하게 하고 지원금도 주고, 참여토록 했다. 그런 시도를 통해 다른 지역에 우리 작가를 보여줬다. 또 광주비엔날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국내작가라면 서울 작가 일부, 광주 지역 작가 일부에 그치고, 나머지 지역 작가가 없다는 것이다. 부산도 그렇다. 왜 광주비엔날레는 서울 작가 일부, 광주작가 몇 명으로만 하느냐. 다른 지역작가를 발굴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나. 창원미술제 때 전체 78명 중 외국작가가 35명이었고 서울 작가 7명, 창원 작가 9명 참여했고, 광주 등 다른 지역 작가들을 많이 불렀다. 다른 지역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주제를 가진 전시를 할 수 있다. 그걸 광주에서 먼저 배려를 해야 하지 않나. 비엔날레가 열린 구조로 갔으면 좋겠다.

이=물론 작가가 몇 명이 들어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주체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오프닝 때 외국의 기획자들이 굉장히 많이 왔는데, 그걸로 끝이다. 그들이 오면 아카이브를 제대로 만들어 지역작가나 광주의 갤러리들을 소개하는 장을 만든다든지, 모든 작가들의 축제가 되는 것은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일 아닌가. 작가로서 본 전시에 포함되면 좋은 일이지만, 그 외의 특별전 형식이나 다른 프로젝트로 해서, 작가들이 비엔날레가 열리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마이클잭슨과 마릴린몬로. 이이남 작가의 작업실은 화장실표지판도 예술적이다.

정=광주비엔날레가 단순히 행사가 아니라 작은 미술관들, 지역의 큰 틀 속에서 개인의 스튜디오 등과도 묶여 나가면서 광주의 미술 문화축제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도 시립미술관은 남의 일로, 쿤스트할레 일도 남의 일로 보는 것 같다. 미술판이라는 피자를 놓고 자기 몫만 바라 볼 뿐, 미술현장도 따로따로 논다. 양림동, 사직동, 대인양동시장 등 주체가 따로따로다. 대인시장 작가는 시장작가로 치부하고, 갤러리 통해서 아트페어 출품한 작가는 또 그쪽 작가로 치부한다. 또 아예 광주와 관계없이 스스로 국제적인 무대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공동작업을 시립미술관에서 제안을 해 볼 수도 있지 않는가?

이=쿤스트할레나 문화전당 등이 따로 움직인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돈은 돈대로 쓰고 있는데 호응도나 작가참여도 등은 글쎄... 접근성은 낮고 외형적으로 아름답다는 것도 아닌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광주비엔날레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광주시립미술관의 역할이다. 왜 그 공간을 활용 못했는가 하는. 하지만 지난 해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디저트전’ 같은 것은 좋지 않았나. 조금만 신경 쓰면 보인다. 그런 역할을 모이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화재단의 역할이다. 이건 정말 실질적인 이야기다. 문화도시 만들자는 큰 틀을 놓고 자기 목소리는 좀 줄여야 한다고 본다.

정=비상시적으로 지역 문화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하나의 자문기구 같이 의견을 교환하는 장을 만들면 어떨까. 예를 들면 광주문화재단의 ‘페스티벌 오! 광주’라든지 9월 디자인비엔날레, 어반폴리, 8월 아트페어 같은 각각의 광주 문화현장의 작업들을 묶어 작은 단위와 네트워크를 하면 홍보도 가능할 것 같다.

이=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큰 플랜 안에 가지들이 있는 그런 장기적 시각이 필요하다. 역량을 모으는 것이다. 광주에서 미술기획 해보니까 어떤가?

정=(나의 기획은) 전문전시공간에서 하는 전시와 현장전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절반씩 해봤다. 현장에서 프로젝트 진행할 때는 그동안 광주에서 소외? 혹은 노는 판이 미술관이 아니었던 작가들과 함께 했고, 전시장 전시는 젊은 작가들 참신한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전시에 더 관심을 뒀다.

중흥동 프로젝트(2006년 진행된 공공미술)에 참가할 때만 해도 공공미술에 대해 지역 작가들이 낯설어 했지만 지금은 작가들이 많이 변했다. 시장 작가, 현장 작가들이 이제는 제도권 안에서 활동한다.

작년부터 광주에 있었기 때문에 광주미술판의 현상을 관심 갖고 봐 왔다. 흔히 광주는 젊은 기획자에게 기회의 땅이라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굉장히 많은데도 웬만한 기획자는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그게 하나의 딜레마다.

40대, 예술 하는 사람이 꾸는 꿈

이=지금 기획하는 작업이 따로 있는가?

정=올해는 글을 쓸려고 해. 책보다는 좀 미술론에 대해 부족한 것 같아서. 작년에 글 쓸 기회가 많았는데, 부족하더라. 그래서 글 쓰면서 올해 공부 좀 하자고 생각했다. 대인시장 안에 한옥을 구해서 옛날 선비 분위기를 내보려고 한다. 시서화에 관심을 갖던 선조들처럼. 작년까지는 너무 급하게 일을 많이 했다. 최근 3년간 20개 정도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

이=글도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일회성 전시는 탈피하자는 것이다. 대인시장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한 프로젝트지만 이후 방치해버렸다. 광주비엔날레 할 때 한 번만 다뤄주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건데. 좋은 프로젝트들이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 기획, 그래서 장소가 관광지가 되도록 가야되지 않나. 전시만 벌이고 소비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외부인들이 와서 전시를 보고 전시 자체가 남을 수 있게, 그래서 그걸 보러 외국에서도 올 수 있는 전시가 필요하다.

정=또 하나 꿈이 있다면 올해가 되든 내년이 되든 나의 외국 인맥들(뉴욕, 시카고, 베를린 등의 작가들)이 뭔가 함께 하자고 하고, 광주 작가 누가 있냐고 물어오는데 지역 작가들이 그들과 교류하는 일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네트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이지.

이=아카이브 해놓으면 좋겠다. 지역 작가 누구든지 아카이브를 해 놓으면(보여줄 수 있는데) 그게 안 돼 있다.

정=디지털 아카이브, 디지털 라이브러리 형태라면 개인이 작업할 수도 있을것 같다.

이=나는 지금이 40대이고, 가장 왕성하게 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래서 스케일 있는 큰 작품도하고 싶고, 힘 닿는 데까지 주어진 전시를 잘 소화해내려 한다. 전시도 중요하지만대작을 통해서 더 심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이이남이란 사람, 작가에 대해 심화시키는 일.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채찍질하고 있다.

정=이남씨는 작품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본다. 본인의 지명도를 통해 새로운 담론에 대한 동지들을 만들어낼 때 개인 이이남이 아니라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리더로 성장하는 방향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다시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이이남은 고전명화와 영상의 만남, 시공간을 뛰어넘는 미디어 아트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이폰 앱 개발등 늘 대중과 쉽게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중이다.

정위상무는 뉴욕 School of Visual Art를 졸업한 뒤 퍼포먼스 작가로 활동했고, 2004광주비엔날레-현장3, 2009창원아시아미술제, 2010아트로드프로젝트-배동신전 등 많은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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