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의 낙타봉과 바람재, 향로봉을 가슴에 품고 그리움으로 아른거리고 있는 제1수원지. 낙타봉과 바람재가 물에 비춰진 모습. 사진을 180도 회전 시켰다.

광주문화탐험

김영대

김영대 _ 광주문화관광탐험대

한 달에 딱 한 번, 무등산에서 온갖 생명들이 펼치는 ‘삶과 예술’을 풀코스로 만날 수 있다. 일본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만나고, 그 아픔 속에 만들어진 숲을 만나고, 의재 허백련 선생을 만나며, 현재의 우리를 무등산 풍경소리로 만난다. 광주 100년 역사의 흐름 속에 예향광주가 담고 있는 자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탐방로

제1수원지와 편백숲 “음향의 예술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

무등산 입구 버스 회차지에서 내리자 봄 햇살이 뺨을 은근히 데워온다. 쿵……. 쿵……. 쿵……. 뺨의 가는 털은 민들레 홀씨를 공중으로 띄우 듯 흔들린다. 햇살과 바람이 이끄는 대로 회차지 맞은편 비포장 길을 향해 걷는다. 그리곤 곧 따스한 햇살에도 차갑게 반짝이는 철제 계단 쪽에서 쿵쿵거리는 기운이 손을 뻗쳐온다. 광주 제1수원지와 편백숲이 있는 쪽이다.

묘지를 지나 철조망으로 경계 지어진 삼나무숲으로 걸어가니 물이 보인다. 그리고 ‘사유지’임을 알리는 푯말이 보인다. 광주 제1수원지다. 1920년대 일본 사람들이 마실 물을 얻기 위해 만들었다. 광복이 되고 1960년대까지 광주 사람들은 이 물을 마셨다. 광주의 인구가 늘면서 제2, 제3, 제4수원지와 동복수원지가 만들어졌고 제1수원지 물은 더 이상 먹지 않게 되었다. 광주시 소유였던 제1수원지는 동복수원지를 만들기 위해 팔렸다. 이제 그 물은 무등산의 낙타봉과 바람재, 향로봉을 가슴에 품고 그리움으로 아른거린다.

...쿵...쿵... 미세한 떨림과 함께 향기도 풍겨져 온다. 애잔한 그리움을 마주하며 샛길을 따라 편백숲으로 걸어간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제1수원지가 풍기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시끌벅적하다. 쿵쿵쿵 쿵쿵 쩍! 쭉쭉 뻗은 편백나무가 저마다 이 박자에 맞춰 신이 났다. ‘쩍’이라는 박자엔 향내를 풀풀 뿜어낸다.

편백나무를 살포시 가슴에 안아보자. ‘쿵 .......’하고 수분이 나뭇가지 끝까지 전달되는 박동이 느껴질 것이다.
편백나무의 박동소리를 실제로 듣고 싶다면 청 진기를 가져가 볼 일이다.

조용히 온숨을 내쉬다보면 편백나무가 부피생장하는 소리가 느껴진다.
쿵쿵쿵 쿵쿵 쩍!

살포시 가슴에 안아 보자. 서로 손을 맞잡은 청춘남녀의 심장이 느껴지는가. 심장으로부터 뿜어진 피가 간절히 간절히 작아지는 품에 품고 온 심장의 미온.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면 청진기를 가져가 볼 일이다. 쿵쿵쿵 쿵쿵 쩍! 음향의 절정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사이. 뿌리로부터 흡수한 수분은 한 번씩 ‘쿵…….’하고 나뭇가지 끝까지 전달된다. 이 때 편백은 부피가 커지면서 표피의 막이 벌어지고 연한 속살을 드러낸다. 이 틈으로 침투하려는 박테리아나 해충을 쫓아내기 위해 편백은 방향성 물질을 내뿜는다. 피톤치드다. 전봇대를 세우기 위해 조성된 무등산 편백숲은 그들 생애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음향의 예술’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 되었다.

의재 허백련 “사는 것이 곧 예술이며, 도 닦는 것이다”

‘스스로(자) 그러함(연)’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이다. 무등산에서 도인 같은 모습으로 산수를 공부며 40여년을 지냈던 의재 허백련 선생은 그래서 “사는 것이 예술이고, 사는 것이 곧 도 닦는 것이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은 “변변히 돈은 벌지도 못하고 나눠 주기도 모자랐던 ‘실패한’ 차 사업, 힘닿는 데까지 한 명이라도 더 가르치겠다고 작정하다 ‘실패한’ 교육사업, 도시와 공장이 뒤덮은 이 땅에 농사를 부르짖었던 ‘실패한’ 흥농 운동, 끝내 천제단을 짓지 못한 ‘실패한’ 단군 운동.” -『의재 허백련,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中 -을 펼쳤다.

실패했지만 여전히 강하게 풍겨져 오는 의재 선생의 삶과 예술의 향기. 그는 화가이면서 다인(茶人)이고, 교육자이고, 휴머니스트이고, 철학자였다. 의재 선생은 남종문인화를 통해 1970년대 전라도 광주에 가면 식당, 이발소 할 것 없이 사군자, 산수화 그림 한 점은 있다고 해서 광주를 예향으로 불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등산 탐방객 안내센터로 이어지는 능선 위에서 “차 한 잔 들고 가게”라며 의재 선생이 손짓하는 듯한 이끌림으로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을 따라 올라가니 증심교 건너로 관풍대가 보인다.
일상의 풍경이 차와 더 가까워지도록 하는 것이 다도라 여겼던 의재 선생이 친구, 제자들과 차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소다. 무등산 해발 700m에서 직접 따서 만든 춘설차를 맛본다. 마르지 않는 무등산 계곡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마르지 않았던 의재 선생의 삶과 예술의 향기도 함께 마신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그 향기에 취한다.

의재 허백련 선생이 농업고등기술 학교를 운영하면서 실습용 축사로 지었던 문향정(미술관쉼터). 지금은 의재 선생의 말씀을 본받아 차도 마시고 차 문화도 배 울 수 있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춘설차로 의재 허백련 선생의 삶 과 예술의 향기에 다가선다.

Tip. 의재 허백련 선생은 의재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만나 볼 수 있다. 의재 선생의 더 많은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면 차공장, 춘설헌, 문향정, 의재미술관, 춘설차밭(삼애다원)에 들러보라. ‘삼애다원’에서는 평일(화~금) 오후 2시~5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직접 차 잎을 따고 덖어 춘설차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무등산풍경소리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다”

심장이 벅차오르도록 온갖 향기에 취해 있다 어스름해지는 저녁이 되어 내려가려고 보니 무등산풍경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무등산 계곡의 물소리와 여러 생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는 어둠을 타고 더 또렷해진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도심에서 들을 수 없는 화음이다. 그 화음에 인간의 소리를 얹었다.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무등산풍경소리는 광주의 어머니 무등산을 중심으로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숲 탐방, 뭇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를 일구어가는 풍경소리 이야기마당,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지역의 문화를 향상시키는 풍경소리 음악 콘서트로 펼쳐진다.

지난 3월 19일 무등산풍경소리에 노래손님으로 초 청된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살레시오수녀회 ‘마인’의 공 연 모습.

Tip. <무등산풍경소리>는 매월 무등산 증심사 문화광장에서 열리는 산사음악회다. 일정을 확인해 숲해설가와 함께 무등산을 둘러보며 다양한 생명들의 이름도 알고 그들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의 하모니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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