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리포트

김해성

김해성 - 서양화가 · 2010북경창작센터 레지던스 참여작가

‘天上龍肉 地上驢肉 하늘에는 용 고기요 땅에는 당나귀 고기..’

180일 간의 북경창작센터를 기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안 가본 것도 아니고 또 모르는 것도 아니었을 터이나(이전에 난 북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해며 소주, 항주 그리고 황산 등의 여행지를 여러 차례 다녀 온 적이 있고 오지여행단의 부단장으로 실크로드만도 여섯 차례나 다녀왔다.) 또 다른 느낌의 설레는 마음이었다.

일행들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와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인적도 없고 전등마저도 드문드문 캄캄하기만 한 곳에 버스가 선다. 늦은 시간도 아니었지만 환티에 이수청 이라는 곳에 모여 있는 크고 작은 건물에 불이 켜진 곳은 거의 없었다. 흐릿한 버스의 실내등을 뒤로 하고 내리는 일행들의 옷들도 한창 추운 겨울이었던 터라 새까맣기만 해 마치 무슨 수용소 시설에라도 온 것처럼 긴장감마저 흐른다.

부산하게 자신들의 물건을 이미 정해진 자신들의 방으로 옮겨 나르고 나 역시 내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간 후 건물에 설치 된 등을 다 켜고서야 아~ 하는 탄식이 나온다. 다들 그러했다 한다. 천정 높이가 8미터에 50평 정도의 높다랗고 널따란 공간이 마음을 개운하게 만든다. 그림을 시작하면서 늘 꿈꾸던 그런 공간이다.
이런 널따란 공간에서 언제 또 작업을 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동안 공간의 제약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커다란 대작을 해보리라 생각을 한다.

북경 창작센터의 외관. 오픈스튜디오를 알리 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북경 창작센터 내부1층 작업공간

영하 20도 추위 달래준 빼갈 한 잔과 흑염소(?) 안주

북경의 겨울은 아주 춥다. 그리고 눈을 그리 자주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 몇 차례의 큰 눈이 내렸었고 녹지 않은 채 상당량의 눈들이 쌓여 길들은 지저분한 얼음으로 결빙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북경은 천안문과 자금성을 중심으로 6개의 환로가 있다. 우리가 머무는 이곳은 5환의 끝이며 6환의 시작인 때문에 우리나라의 시골이나 다름없다. 마치 우리나라의 60년대 모습을 보는 듯하다.

며칠을 추위로 인해 나가지 못하고 작업 공간에 쳐 박혀 어리둥절한 채로 지내다가 3~4일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중국에 왔으니 밖으로 나가 빼갈이라도 한 잔 마셔보자며 길을 나섰다. 귀를 얼려 깨뜨리기라도 할 것 같은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상당히 오랜 시간을 걷는데도 가게는 보이지 않고 몇 대 지나치는 차들의 크락션 울리는 소리 말고는 온 사방이 고요하다. 이거 괜히 나왔지 않냐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때 쯤 길 건너 보석처럼 빛나는 가게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드디어 가게를 찾았다는 기쁨에 발걸음에 힘이 생긴다. 가게 가까이 다가서니 희뿌연 간판에 그려진 동물이 보인다. 보아하니 흑염소 같다.

환티에 이수청 입구
환티에의 철로

카~~, 이곳에선 저렇게 한국에선 약으로나 쓰는 걸 안주로 먹는구나 하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위생 상태가 형편없어 보이는 책상이 서너 개 쯤 되는 지저분하고 작은 가게다. 중국인 한 사람이 여기 저기 이가 나간 작은 접시에 가득 담긴 까만 고기를 안주 삼아 빼갈을 들이키고 있다. 흑염소는 어떤 맛일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입맛을 다시며 일행들이 자리에 앉자 난 주인에게 주문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국어라곤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라 모두들 나만 쳐다본다. 내가 중국어를 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나 또한 몇 마디 외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어쩌랴, 다들 나만 믿고 있는데...

조용히 주방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되지도 않는 말로 흑염소를 술과 함께 달라고 했다. 지켜보니 냉장고에서 냉기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한 덩어리를 꺼내어 그냥 칼로 썰어 접시에 담아준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추운 겨울 칼바람을 뚫고 와서 안주를 시켰더니 거의 아이스크림에 가까운 고기를 주다니.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말이 되질 않으니 대충 손동작으로 직접 물건들을 가리키며 그릇에 담아 불에 끓여 달라고 요구했다.

주인은 환하게 웃더니 아~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냄비에 물과 고기를 넣고 야채를 썰어 우리 테이블 위 고체연료로 된 버너에 올려 불을 붙여 준다. 비로소 일행들의 입가에 미소가 띤다. 건배를 하며 뜨거운 국물과 함께 고기를 건져 먹는데, 카~ 그 맛이 일품이다. 소고기와는 전혀 다른 육질이면서 독특하고 깊은 맛에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맛있다고 좋아한다. 또 한 테이블에 손님이 와 앉더니 햄버거 모양의 빵을 시켜서 먹는다. 맛있을 것 같아 우리도 몇 개 시켜 먹었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북경에 와서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하늘엔 용 고기, 땅에는 당나귀 고기가 으뜸?

북경 창작센터에서 가까운 곳엔 한국인들이 대거 모여 사는 왕징이라는 도시가 있다. 택시로 20분 정도 되는 거리고 버스를 타려 해도 상당히 많은 거리를 걸어 나와야 하기 때문에 화구를 사거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식료품을 사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양 꼬지 구이를 하는 회족식당

북경 창작센터는 입주 작가 5명의 공간과 또 하나의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는 전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으로 와 왕징에 있는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해 현지 조선족과 결혼해 정착해 사는 박웅규라는 사람이 거주한다. 박 선생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광주시립미술관의 행정적인 일들과 또 우리 일행들의 북경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박 선생에게는 차가 있는데 매 주 한 번씩 희망자를 태워 시내에 나가 쇼핑을 돕고 쇼핑한 물건들을 차에 실어 나르는 일을 도와준다. 북경 생활이 일주일 정도 지날 즈음 처음으로 시내 쇼핑을 위해 차를 탔다. 차 안에서 도움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나가서 술을 마셨고 안주로 흑염소 고기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는 자랑을 늘어놨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 선생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 부근에는 흑염소를 파는 집이 있을 리 없다고 한다.

일행들은 간판에 흑염소가 두 마리나 그려져 있었는데 무슨 말이냐며 그 식당을 차가 지나칠 무렵 일제히 확신에 찬 표정으로 간판을 가리키는데. 아뿔싸! 흑염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당나귀 두 마리가 웃고 있다. 말고기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당나귀 고기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는데 그걸 먹게 되다니.. 그 맛? 하늘에는 용 고기가 최고라면 땅에는 당나귀 고기의 맛이 으뜸이라는 중국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레드 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우리의 전시회

북경의 왕징에는 중국의 유명 미술대학의 하나인 중앙미술학원이 있다. 이 학교에는 꽤 많은 한국인들이 다니고 있으며 광주 출신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 그들 중 제자 몇 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우리 일행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북경에서 가장 큰 예술지구인 ‘송좡’이란 곳엘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레드 아트라는 이름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인병국 씨를 만나게 되었다.

인 사장은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촬영에 참여하기도 했던 분으로 중국에서 토이카메라 사업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분이기도 한데 3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다. 인 사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송좡에 거주하면서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제자들은 인사장과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갤러리는 송좡 예술특구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현대미술의 대부인 리시엔팅의 사무실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다. 제자들은 우리가 북경에 오기 전 인 사장과 이미 시립미술관의 창작센터에 관해 이야길 했었다 한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 일행의 전시를 열면 좋겠다는 이야길 했고 후에 우리 일행들을 식사에도 초대했다. 전시 개막엔 꽤 많이 알려진 중국의 작가들도 상당 수 눈에 띄었다.

레드아트 갤러리 전시 오픈과 제자들

오랜 시간 중국 미술에 관심을 갖고 공을 들여 온 인 사장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북경에 진출한 한국의 갤러리들 중 상당수는 북경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올림픽 즈음한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조금 시들해진 이유와 세계 경제의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론 소극적 자세의 경영이 문제를 갖게 한 것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인 사장은 전시회 자체보다도 홍보에 많은 부분 공을 들이는 듯 했다. 우리의 전시가 중국의 언론매체에 상당히 많이 소개된 것으로 보아 인 사장의 노력을 알 수 있었다. 북경에는 인 사장을 포함한 몇몇의 한국인들이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시립미술관과 연계해 이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짧은 6개월…중국 작가들과의 교류 아쉬워

작업장 내부 모습

6개월 동안의 북경생활은 몇 가지 아쉬움을 갖게 한다. 환티에 이수청에 입주한 많은 수의 중국 화가들은 최근 들어 다소 상황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갖지 않는 이른바 살만한 화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추운 겨울은 따뜻한 집에서 지내고 봄이 되어서야 이곳에 들어와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사실상 이들과의 교류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한창 추운 겨울에 입주해 3개월 정도를 작업실 내에서 적응기간을 보내다가 중국 작가들을 만나고 활동을 시작할 때쯤이면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경 현지 작가들과 교류를 한다고 하더라도 언어 문제로 거의 소통이 어려운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들과의 실질적인 교류와 성과를 위해서는 입주 작가를 적어도 1년 전 쯤 선정해서 중국어를 익히는 기간을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지에서 중국의 미술을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이지만 중국 화가들과의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교류가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체류기간도 적어도 1년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된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의 기회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1인이 거주하는 공간을 2명이 함께 사용하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7889 지역 WITH 갤러리에서의 성과물 발표

북경 내의 작업 기간이 끝나고 그 성과물을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798지역의 WITH 갤러리에서였는데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기억이 있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90%가 넘는 한족과 조선족을 포함한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북경에 있는 동안 중국의 소수민족을 주제로 작업을 했었는데 북경에서 알게 된 분으로 전 일본 금속협회장을 역임한 보석디자이너로 베이징 내 커다란 몇 개의 매장에서 보석을 취급하고 있으며 깔린 보석만 100억이 넘는다.(나도 15억짜리 반지를 한번 착용해 봤다)

15억 하는 사파이어와 다이아로 셋팅된 반지
보석 디자이너와 중국 소수민족 대표, 사또상과 함께 With갤러리전시 중

그분과 함께 일하는 분(일본 명 사또상)의 고향이 회족 자치지구인 난쪼우 근처의 링샤 인데 그 분의 소개로 중국 내에서 지위가 아주 높은 분이 내 작품을 보러 오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은 중국 소수민족의 대표였고 중국 전당대회 사진을 보니 당주석 오른 쪽으로 다섯 번째 자리에 위치해 있는 권력자였다. 이러 저런 이유로 작품을 판매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관심과 부러움의 대상, 광주의 북경 창작센터

광주시립미술관의 북경 창작센터는 다른 지자체 관계자나 중국에 진출한 다른 지역 출신 문화 예술인과 관계자들에게 늘 관심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오픈 스튜디오를 위한 작품이 설치된 모습

우리 또한 감사와 자긍심을 느끼며 활동한 북경생활의 6개월에서 한국문화원과 레드아트 갤러리의 초대전 그리고 오픈 스튜디오, 798지역 내 WITH 갤러리의 발표전과 슐츠갤러리를 통한 베이징 아트페어 참여 등 발표 기회가 적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다소 머뭇거려진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 나간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다란 성과를 갖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침 마다 찾았던 국수가게

중국의 폭발적인 변화는 설명하지 않더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중국의 정책 또한 계획되고 실행하는 데 거침이 없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북경 내의 문화지구는 정책적으로 몇 개만으로 조정되고 있는데 광주시립미술관 관계자의 안목으로 북경창작센터가 소재한 환티에 지구는 살아남을 것이며 폐쇄된 문화지구의 화가들이 유입되는 이유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할 것으로 보인다. 창작센터의 북경 진출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비싼 땅 값 때문에 실행에 옮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북경의 6개월은 어쩌면 내 인생의 기다란 휴가와도 같았다. 뭐, 내 삶 자체가 휴가라고 늘상 생각해 왔지만. 잘 만들어진 콘도에서 빨래하고 요리하고 아무 때나 자고 또 아무 때나 일어나고(그 중 제일은 침대에 누워 담배 하나 피우고 잠드는 일이었다) 작업하고, 또 언제 이런 걸 해 볼 수 있으랴~

당나귀 고기의 맛도 잊을 수 없지만 회족식당에서의 양꼬치에 빼갈, 캬~. 언제 또 맛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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